[박현도의 이슬람 이야기] 한국 무슬림 12만 시대, 이슬람과 함께 사는 법

[박현도의 이슬람 이야기] 국내 무슬림 12만명 시대, 이슬람과 더불어 사는 법이 이주 무슬림들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점차 주변화되어 자신들만의 문화와 전통에 집착하고 한국사회 내에서 게토(Ghetto)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박현도의 이슬람 이야기] 국내 무슬림 12만명 시대, 이슬람과 더불어 사는 법이 이주 무슬림들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점차 주변화되어 자신들만의 문화와 전통에 집착하고 한국사회 내에서 게토(Ghetto)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박현도 박현도

⊙ 2006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무슬림으로 개종한 사람은 모두 80명⊙유럽에서 이슬람과의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슬람이 신성한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믿는 유럽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국내 거주 무슬림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이들과 공존의 길 앞으로 모색해야 할 박현도⊙1966년 전남 목포 출생⊙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연구소 박사과정 수료. ⊙ 현 서강대 종교연구소 책임연구원, 종교문화원 연구위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종교간 대화위원, <종교와 평화> 편집위원. ⊙저서: <사람의 종교, 종교인>(공저)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공저) <재미있는 종교이야기>(공저). ⊙ 2006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무슬림으로 개종한 사람은 모두 80명⊙유럽에서 이슬람과의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슬람이 신성한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믿는 유럽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국내 거주 무슬림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이들과 공존의 길 앞으로 모색해야 할 박현도⊙1966년 전남 목포 출생⊙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연구소 박사과정 수료. ⊙ 현 서강대 종교연구소 책임연구원, 종교문화원 연구위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종교간 대화위원, <종교와 평화> 편집위원. ⊙저서: <사람의 종교, 종교인>(공저)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공저) <재미있는 종교이야기>(공저).

 

 

무슬림들이 금요일 예배를 마치고 이슬람중앙성원을 나서고 있다. 무슬림들이 금요일 예배를 마치고 이슬람중앙성원을 나서고 있다.

한국 종교사를 보면 한국 조상들의 종교적 열정은 남달랐다. 중국을 통해 받아들인 불교지만 혜초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로 구법(구법) 여행을 다녀왔다. 천주교는 처음부터 유학자들이 선교사 내한 전에 먼저 공부했다. 개신교는 선교사들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20세기 초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슬람의 경우는 기존의 외래 종교 전래와는 전혀 다르게 선교사나 한국인의 종교적 열정으로 교세가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증가하면서 무슬림이 늘어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른바 토종 한국의 무슬림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중동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국가에서 일하기 위해 편의상 무슬림이 된 사람들을 포함해 약 3만4만 명의 한국 무슬림이 있다고 한다. 이는 허수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도 한국 이슬람교도의 정확한 수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30년 전 무슬림이 돼 국내 최초로 무슬림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철(알리 김) 씨에 따르면 매주 금요일 한남동 중앙성원 합동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한국인은 4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제로 예배 참석자 10명 중 9명은 외국인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무슬림 이주노동자의 국내 유입이 점증하면서 한국 이슬람은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뤘다. 그에 따라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 현상도 나타났다. 이를 상징하는 용어가 ‘Koslim’이다. ‘코슬림’이란 이주무슬림 자녀, 즉 1.5세(이주무슬림이 데려온 자녀)와 이주무슬림이 한국인과 결혼해 낳은 2세를 총칭해 부르는 말로, 명지대 조희선 교수 이주무슬림 연구팀이 처음 썼다. 아직 어린 코스림이 성인이 됐을 때 한국 이슬람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지금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안종국 박사는 한국 남성과 무슬림 여성 2세가 무슬림 남성과 한국 여성의 자녀보다 종교문화적으로 더 유연하고 종교 선택권이 더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교의 확산을 경계하는 개신교계 이슬람교도들의 눈부신 성장으로 인해 최근 한국의 이슬람교를 바라보는 일부 국내 개신교 신자들의 시선이 매우 따갑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다종교 간 평화공존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이런 틀이 최근 일부 개신교계의 반이슬람 정서로 인해 조금씩 허물어질 조짐이 보인다. 전 세계 168개국에 2만여 명에 이르는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는 한국 개신교계는 2000년대 들어 이슬람권 선교에 박차를 가해 왔다. 중동선교회에 따르면 현재 이슬람권 30여 개국에 70여 명의 선교사를 파견했다. 개신교계 일부 지도자들은 2005년 이슬람 전래 50주년 행사 이후 한국 이슬람에 대해 전례 없이 강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무슬림은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으며 한국 이슬람도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부쩍 증가한 국내 이주 무슬림 노동자들이 한국인과 국제결혼을 해 근본주의 사상을 퍼뜨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개신교계 이슬람권 선교 관련 사이트 및 언론매체에는 ‘이슬람의 한국 노예화 전략’ ‘밀려오는 이슬람의 공격’ ‘2020년까지 한국 이슬람화’ 등 자극적 제목의 글이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 같은 글은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을 폭력적이고 전투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국내 유입의 핵심 세력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국내에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이 확장되면 반미 반서방 반기독교 반자본주의 좌경세력이 큰 힘을 얻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한국 무슬림을 기독교 신자로 개종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한편으로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한국 땅에 들어오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제안한다. 인터넷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의 이슬람 담론은 많은 부분이 과장되거나 왜곡된 정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인 반이슬람 분위기에 편승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유통되고 있다. 과장된 이슬람교의 위협, 대표적인 잘못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한국이슬람교중앙회는 정부와 국내외 여러 유관기관, SK그룹의 후원으로 2005년 11월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아시아 내 이슬람과 타(타)종교: 공존과 협력’이라는 주제로 한국이슬람 전래 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종교 간 대화와 평화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오갔다. 하지만 개신교 선교 관계자들의 글에서는 이 학술대회가 ‘2020년까지 한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겠다는 전략이 보다 구체화’된 ‘중동 이슬람 지도자 선교대회’로 바뀐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가 펴낸 <한국이슬람 50년사>는 “체계적인 선교 방안 아래 모두가 신앙심을 바탕으로 조직적인 선교 활동을 펼친다면 4500만 명의 한국인 중 상당수를 우리 형제·자매로 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최근 많은 한국인 남녀가 외국인 무슬림들과 국제결혼을 하고 한국에 정착함으로써 신앙을 기반으로 한 건전한 가정이 탄생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자녀들이 성인이 되는 10년 후에는 한국에 보다 실질적인 이슬람이 정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기술(기술)하고 있다. 일부 개신교 선교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국제결혼을 통한 무슬림 자녀 출산 등의 전략을 통해 10년 뒤 4500만 한국인 대부분이 무슬림이 되도록 하는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개신교계의 한 유력한 목사는 “한국 여성이나 농어촌 총각과 결혼, 자녀를 무슬림화하거나 중동에 나가 있는 한국인 근로자나 자이툰 부대원을 대상으로 이슬람을 전파하는 등 한국과 한국인이 이슬람교 선교 대상이 되고 있다”고 경계한다. 이슬람교도 남성과 결혼하여 비이슬람교도였던 아내가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그 둘 사이에 이슬람교도 자녀가 태어나 중동의 노동자 한국 종교사를 보면 한국 조상들의 종교적 열정은 남달랐다. 중국을 통해 받아들인 불교지만 혜초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로 구법(구법) 여행을 다녀왔다. 천주교는 처음부터 유학자들이 선교사 내한 전에 먼저 공부했다. 개신교는 선교사들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20세기 초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슬람의 경우는 기존의 외래 종교 전래와는 전혀 다르게 선교사나 한국인의 종교적 열정으로 교세가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증가하면서 무슬림이 늘어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른바 토종 한국의 무슬림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중동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국가에서 일하기 위해 편의상 무슬림이 된 사람들을 포함해 약 3만4만 명의 한국 무슬림이 있다고 한다. 이는 허수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도 한국 이슬람교도의 정확한 수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이슬람 문화를 배워 이슬람교도가 된 자이툰 부대원들이 서울 이슬람중앙성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이슬람 문화를 배워 이슬람교도가 된 자이툰 부대원들이 서울 이슬람중앙성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 따르면 국내에 있는 이슬람 선교사는 12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슬람 국가에서 온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의 요청으로 들어왔다.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것을 국내 무슬림의 선교 전략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는 기독교인도 있다. 아랍어를 배우면 이슬람을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 아랍어학과 아랍지역학과는 이슬람 전파에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는 이슬람의 잠재적 재원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이어 한국 이슬람은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운동을 벌여 아랍어과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거나 중동으로 유학을 가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에 소재한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으려면 유학생들은 십중팔구 코란을 읽고 이슬람으로 개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아랍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코란을 공부하는 것이 옳다. 이는 신앙의 차원을 떠나 학술적인 것이다. 코란을 통해 아랍어 문법이 발전했다는 것은 역사적·객관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국내 개신교 선교 관계자들은 학문과 신앙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아예 하지 않으려 한다. 같은 논리로 되묻자.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공부를 위해 성경을 읽는 사람은 모두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 쉽게 점수를 따기 위해 지난 대학입시에서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수험생들도 모두 잠재적인 무슬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정보에 근거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이슬람 혐오증을 조장하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개신교계 목사와 학자들의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2008년 12월 바른교회아카데미와 청어람아카데미가 주최한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 실체를 진단하는’ 세미나가 좋은 예다. 이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부정확한 정보와 편견으로 이슬람교와 이슬람교도에 대한 공포감과 혐오감이 커져가는 현실을 비판하고 이슬람교에 대한 정보는 신중하게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와 이슬람교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계연합의 이슬람 강좌 개최를 제안했다. 또 외국인 사역 단체와 무슬림, 기독교인이 함께하는 종교 간 이해의 장으로 ‘타문화 타종교’ 실천 기구를 만들어 국내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대화를 활성화시켜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무슬림과 관련된 정치적 폭력이나 테러가 발생할 때만 이슬람은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런 노력이 부족한 것이 한국 이슬람교의 현실이다. 덴마크 신문에 의한 무함마드의 만평 사건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 따르면 국내에 있는 이슬람 선교사는 12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슬람 국가에서 온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의 요청으로 들어왔다.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것을 국내 무슬림의 선교 전략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는 기독교인도 있다. 아랍어를 배우면 이슬람을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 아랍어학과 아랍지역학과는 이슬람 전파에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는 이슬람의 잠재적 재원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이어 한국 이슬람은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운동을 벌여 아랍어과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거나 중동으로 유학을 가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에 소재한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으려면 유학생들은 십중팔구 코란을 읽고 이슬람으로 개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아랍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코란을 공부하는 것이 옳다. 이는 신앙의 차원을 떠나 학술적인 것이다. 코란을 통해 아랍어 문법이 발전했다는 것은 역사적·객관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국내 개신교 선교 관계자들은 학문과 신앙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아예 하지 않으려 한다. 같은 논리로 되묻자.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공부를 위해 성경을 읽는 사람은 모두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 쉽게 점수를 따기 위해 지난 대학입시에서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수험생들도 모두 잠재적인 무슬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정보에 근거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이슬람 혐오증을 조장하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개신교계 목사와 학자들의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2008년 12월 바른교회아카데미와 청어람아카데미가 주최한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 실체를 진단하는’ 세미나가 좋은 예다. 이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부정확한 정보와 편견으로 이슬람교와 이슬람교도에 대한 공포감과 혐오감이 커져가는 현실을 비판하고 이슬람교에 대한 정보는 신중하게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와 이슬람교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계연합의 이슬람 강좌 개최를 제안했다. 또 외국인 사역 단체와 무슬림, 기독교인이 함께하는 종교 간 이해의 장으로 ‘타문화 타종교’ 실천 기구를 만들어 국내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대화를 활성화시켜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무슬림과 관련된 정치적 폭력이나 테러가 발생할 때만 이슬람은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런 노력이 부족한 것이 한국 이슬람교의 현실이다. 덴마크 신문에 의한 무함마드의 만평 사건

덴마크 일간지 윌런스 포스텐에 실린 12컷의 무함마드 만평은 이슬람 세계를 격분시켰다. 덴마크 일간지 윌런스 포스텐에 실린 12컷의 무함마드 만평은 이슬람 세계를 격분시켰다.

심각한 저(저)출산으로 나라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는 이민 문호를 넓히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이민정책이 현실화되면 정부의 의도적인 규제가 없는 한 국내 이주 무슬림의 수가 현재 수준보다 더 낮아지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영국·프랑스와 달리 무슬림 세계 식민지배라는 원죄에서 자유롭고 타종교에 더 관용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유럽처럼 무슬림과 심각한 문화적 갈등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유럽이 무슬림 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유럽이 전통적인 기독교 문화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 근대국가의 기축인 세속주의를 무슬림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근본 원인이 있다. 세속주의는 신성한 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신성불가침이라는 영역이 없다. 2006년 덴마크의 유력 일간지 윌런스 포스텐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얼굴을 소재로 한 12컷의 만평을 게재해 이슬람권의 분노를 샀다. 윌런스 포스텐의 만평은 무엇이든 다 표현할 수 있다는 자유가 종교적 금기보다 앞선다는 세속주의가 그 출발점이었다. 덴마크 아동작가 커리 브루이트겐은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만들면서 무함마드의 얼굴을 삽화에 넣고 싶었지만 접촉한 삽화가마다 무슬림의 종교심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 소식을 접한 윌런스 포스텐의 문화면 편집자는 표현의 자유를 외치려고 12컷짜리 무함마드 만평을 신문 1면에 실었다. 그런데 그림이 상당히 과격했다.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 터번을 머리에 두른 무함마드. 그 터번의 중앙에 위치한 아라 말고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다라는 예술적 서체의 아랍어 구절. 신의 뜻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에게 신이 약속한 딸이 천국에 더 이상 없다며 자살폭탄 순교자의 천국행을 제지하는 무함마드 등. 우상숭배를 철저히 금기시하는 이슬람 신앙은 전통적으로 종교적 그림이나 조형물을 철저히 금지해 왔다. 대신 발전한 것이 기하학적 아라베스크 무늬다. 그래서 이슬람 성원 어디에도 신의 형상이나 예언자 무함마드의 초상화가 없다. 신성한 것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심각한 저(저)출산으로 나라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는 이민 문호를 넓히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이민정책이 현실화되면 정부의 의도적인 규제가 없는 한 국내 이주 무슬림의 수가 현재 수준보다 더 낮아지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영국·프랑스와 달리 무슬림 세계 식민지배라는 원죄에서 자유롭고 타종교에 더 관용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유럽처럼 무슬림과 심각한 문화적 갈등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유럽이 무슬림 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유럽이 전통적인 기독교 문화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 근대국가의 기축인 세속주의를 무슬림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근본 원인이 있다. 세속주의는 신성한 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신성불가침이라는 영역이 없다. 2006년 덴마크의 유력 일간지 윌런스 포스텐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얼굴을 소재로 한 12컷의 만평을 게재해 이슬람권의 분노를 샀다. 윌런스 포스텐의 만평은 무엇이든 다 표현할 수 있다는 자유가 종교적 금기보다 앞선다는 세속주의가 그 출발점이었다. 덴마크 아동작가 커리 브루이트겐은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만들면서 무함마드의 얼굴을 삽화에 넣고 싶었지만 접촉한 삽화가마다 무슬림의 종교심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 소식을 접한 윌런스 포스텐의 문화면 편집자는 표현의 자유를 외치려고 12컷짜리 무함마드 만평을 신문 1면에 실었다. 그런데 그림이 상당히 과격했다.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 터번을 머리에 두른 무함마드. 그 터번의 중앙에 위치한 아라 말고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다라는 예술적 서체의 아랍어 구절. 신의 뜻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에게 신이 약속한 딸이 천국에 더 이상 없다며 자살폭탄 순교자의 천국행을 제지하는 무함마드 등. 우상숭배를 철저히 금기시하는 이슬람 신앙은 전통적으로 종교적 그림이나 조형물을 철저히 금지해 왔다. 대신 발전한 것이 기하학적 아라베스크 무늬다. 그래서 이슬람 성원 어디에도 신의 형상이나 예언자 무함마드의 초상화가 없다. 신성한 것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미국 대법원에 설치된 무함마드의 부조상. 미국 대법원에 설치된 무함마드의 부조상.

전통적으로 이슬람 신앙에서는 무함마드를 그린다고 해도 얼굴 모양만 그리지만 눈, 코, 입 등은 절대 그리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아 왔다. 그저 하늘의 원형이 그의 얼굴이다. 우상숭배를 할까 봐 미리 안전장치를 한 것이다. 예수의 초상화나 조각이 넘쳐나는 기독교 전통과는 사뭇 다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함마드의 얼굴을 냉소적이고 조롱하듯 표현했으니 무슬림이 화를 낼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만화가 차례로 퍼지면서 이슬람 국가들은 덴마크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각국 무슬림들은 덴마크 국기를 불태우고 대사관을 공격하며 덴마크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또 그림을 그린 작가 2명은 살해 위협을 받았다. “신성한 일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믿는 유럽 언론들은 무슬림의 이런 행동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인식하고 반격에 나섰다. 많은 언론이 문제의 발단이 된 덴마크 만화를 전재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나는 무함마드를 그려서는 안 된다(Jene dois pas dessiner Mahomet)는 프랑스어 문장으로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 그림 속에서 글씨를 쓰는 펜은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이슬람 성원의 첨탑 모양이다. 세속주의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는 유럽인들의 노력은 아름답다. 신성한 것도 비판할 수 있다는 정신은 곧다. 잘못된 것을 종교적 권위를 내세워 미화하거나 포장하는 종교인이나 신앙 형태는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그 좋은 의도가 무함마드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내용 때문에 손상된 것은 성숙하지 못한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보다 8년 전인 1997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미국 대법원 건물 내 벽면에 인류 역사를 빛낸 18명의 위대한 법률가들의 부조상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무함마드다.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코란을 들고 있는 그는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대제)와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이에 서 있다. 서로 코드가 어긋나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 전통적으로 이슬람 신앙에서는 무함마드를 그린다고 해도 얼굴 모양만 그리지만 눈, 코, 입 등은 절대 그리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아 왔다. 그저 하늘의 원형이 그의 얼굴이다. 우상숭배를 할까 봐 미리 안전장치를 한 것이다. 예수의 초상화나 조각이 넘쳐나는 기독교 전통과는 사뭇 다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함마드의 얼굴을 냉소적이고 조롱하듯 표현했으니 무슬림이 화를 낼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만화가 차례로 퍼지면서 이슬람 국가들은 덴마크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각국 무슬림들은 덴마크 국기를 불태우고 대사관을 공격하며 덴마크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또 그림을 그린 작가 2명은 살해 위협을 받았다. “신성한 일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믿는 유럽 언론들은 무슬림의 이런 행동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인식하고 반격에 나섰다. 많은 언론이 문제의 발단이 된 덴마크 만화를 전재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나는 무함마드를 그려서는 안 된다(Jene dois pas dessiner Mahomet)는 프랑스어 문장으로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 그림 속에서 글씨를 쓰는 펜은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이슬람 성원의 첨탑 모양이다. 세속주의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는 유럽인들의 노력은 아름답다. 신성한 것도 비판할 수 있다는 정신은 곧다. 잘못된 것을 종교적 권위를 내세워 미화하거나 포장하는 종교인이나 신앙 형태는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그 좋은 의도가 무함마드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내용 때문에 손상된 것은 성숙하지 못한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보다 8년 전인 1997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미국 대법원 건물 내 벽면에 인류 역사를 빛낸 18명의 위대한 법률가들의 부조상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무함마드다.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코란을 들고 있는 그는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대제)와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이에 서 있다. 서로 코드가 어긋나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

2009년 11월 29일 이슬람 첨탑 건설 금지 법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한 뒤 인권단체 회원들이 종이로 만든 ‘이슬람 첨탑’ 모형을 머리에 쓰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9년 11월 29일 이슬람 첨탑 건설 금지 법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한 뒤 인권단체 회원들이 종이로 만든 ‘이슬람 첨탑’ 모형을 머리에 쓰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